
윤겔라만 20년간 포켓몬카드에서 사라졌다
캐이시-윤겔라-후딘 진화선의 이름은 실존 심령술사·마술사 3인방에서 따왔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중 윤겔라는 스푼 굽히기 초능력자 유리 겔러의 소송 이후 20년 가까이 신규 카드가 끊겼다가 2023년 포켓몬카드151로 돌아왔습니다.
캐이시, 윤겔라, 후딘. 같은 진화선인데 이름 짓는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영어권에서는 마법 주문 "abracadabra"를 세 조각(Abra-Kadabra-Alakazam)으로 잘라 붙였고, 일본과 한국은 실존 인물 세 명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실제로 화가 나서 소송까지 걸었습니다.
상대는 스푼 굽히기로 유명했던 초능력자 유리 겔러. 상대편은 닌텐도였고, 그 여파로 이 포켓몬 한 마리는 카드에서 20년 가까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일본어 원명 기준으로 이 진화선은 캐이시(ケーシィ) → 윤겔라(ユンゲラー) → 후딘(フーディン) 순으로 진화합니다. 셋 다 초능력이나 마술과 관련된 실존 인물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게 정설로 통합니다.
- 캐이시 — 최면과 예언으로 유명했던 미국인 에드거 케이시(Edgar Cayce)
- 윤겔라 — 스푼 굽히기 초능력자 유리 겔러(ユリ・ゲラー, Uri Geller)와 발음이 거의 같습니다
- 후딘 — 탈출 마술의 대명사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
닌텐도는 소송 과정에서 "특정 인물을 모델로 한 캐릭터는 없다"고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이름과 발음이 이 정도로 겹치는 걸 전부 우연이라 하기엔, 저는 좀 억지스럽다고 봅니다 — 셋 다 방향이 같은 우연이라는 게 이상하죠.
레벨업만으로는 안 끝나는 진화
캐이시는 레벨 16이 되면 자동으로 윤겔라로 진화합니다. 여기까진 흔한 방식이죠. 문제는 다음 단계입니다.
윤겔라 → 후딘은 레벨업으로 진화하지 않습니다. 통신교환을 해야만 진화하는, 1세대부터 이어진 몇 안 되는 특이 케이스입니다. 혼자 게임하다가 후딘을 처음 보려면 결국 친구가 있어야 했다는 뜻입니다.
도감 설정도 화려합니다. 후딘의 지능은 여러 세대 도감에서 "IQ 약 5000"으로 묘사됩니다. 슈퍼컴퓨터보다 똑똑한 셈이죠. 캐이시 카드에는 "잠이 든 상태에서 순간이동이 가능하다. 깊이 잠들수록 먼 곳으로 이동한다고 한다"는 설명이 붙고, 윤겔라 카드에는 "진화에 대비하여 이마에 있는 별에 사이코 파워를 비축하고 있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 별이 나중에 소송에서 쟁점이 됩니다.
스푼 굽히기 초능력자가 화를 냈다
1999년 말, 유리 겔러는 닌텐도를 상대로 소송을 예고했습니다. 실제 제소는 2000년 11월. 장소는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 청구액은 6,000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8,700만 달러)였습니다.
겔러 측 주장은 세 가지였습니다. 이름이 자기 일본어 표기(ユリ・ゲラー)와 닮았다는 것, 캐릭터가 들고 있는 구부러진 스푼이 자신의 시그니처 연출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것, 그리고 윤겔라 이마의 별 모양과 배에 그려진 지그재그 무늬가 나치 친위대(SS)나 유대인 강제수용소 표식을 연상시켜 자신을 사악한 오컬트 캐릭터처럼 그렸다는 것입니다.
법원의 판단은 겔러에게 계속 불리했습니다. 2001년에는 비거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프라이버시법 관련 청구 일부가 기각됐고, 2002년 11월에는 상표권 주장도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습니다. 2003년 3월 3일, 소송 전체가 최종 각하되며 끝났습니다.
법적으로는 닌텐도가 이겼습니다. 그런데 정작 카드는 그 뒤로 20년 가까이 안 나왔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 사건에서 제일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길 자신이 있었으면서 왜 그렇게까지 조심했을까요. 여기까진 저도 정확한 이유를 못 찾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카드 기술 이름은 정반대로 갑니다. 2016년 초능력의 제왕에 실린 후딘EX의 특성 이름은 "숟가락휘기", 2020년 앙천의 볼트태클 후딘V의 기술은 "사념의숟가락"입니다. 소송의 핵심 소재였던 스푼을 기술 이름에 그대로 박아놓은 셈이죠.
20년 만의 복귀
포켓몬 트레이딩카드게임 기준으로 윤겔라 신규 카드는 2003년 미국판 스카이릿지(Skyridge) 이후 끊겼다가, 2023년 일본 포켓몬카드151에서 돌아왔습니다. 같은 해 9월 나온 영어판 스칼렛&바이올렛 151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니메이션도 비슷한 공백을 겪었습니다. 2005년 배틀 프론티어 편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2021년 12월 스핀오프 "포켓몬 에볼루션즈"에서 16년 만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변화의 계기는 겔러 본인이었습니다. 2020년 11월, 겔러는 자신의 SNS에 사과문을 올리며 캐릭터 사용을 직접 허가한다고 밝혔습니다. 소송을 걸어놓고 20년 뒤 스스로 화해를 선언한 셈인데,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우도 이 카드에 한 번 당했다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사프론시티 체육관 관장 초련의 이 진화선을 기억할 겁니다. 지우가 처음 도전했을 때, 배틀 중이던 캐이시가 갑자기 윤겔라로 진화하며 압도적인 힘으로 지우 팀을 몰아붙였고, 결국 텔레파시로 조종당한 지우가 기권을 선언하는 장면으로 끝났습니다. 결과는 기권패. 재대결에서는 아예 후딘까지 완전진화한 채로 등장했습니다.
지금 시세는 이렇습니다
지금 라인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카드는 2023년 포켓몬카드151에 실린 후딘ex SAR입니다. 20년 공백을 깨고 나온 복귀작인 만큼, 이 진화선 안에서는 가장 비쌉니다.
| 등급 | 가격대 | 시점(naver_shopping·naver_cafe) |
|---|---|---|
| 무등급 | 34,000~40,000원 | 5~6월 거래 |
| PSA9 (카페 낙찰) | 38,000원 | 5/24 마감 |
| BRG9 | 50,000~53,000원 | 3·6월 거래 |
| BRG10 | 61,900~82,600원 | 6~7월 거래 |
| PSA10 | 115,000원 | 3/22 거래 |
등급을 매기면 무등급 대비 3배 넘게 뜁니다. 다만 네이버카페 실거래로 확인된 건은 5월 24일 마감된 PSA9 3만 8천원, 이 한 건뿐입니다. 표본 1건. 흐름 판단은 보류합니다.
나머지 라인업은 부담 없는 가격대입니다. 2016년 후딘EX RR("숟가락휘기") 6,400원, 2020년 후딘V SR("사념의숟가락") 2,500~8,190원, 2023년 후딘ex SR 4,000~4,500원대, 2024년 샤이니트레저ex SSR 5,000원, 2025년 최신작 메가심포니아 AR 4,000원. 캐이시·윤겔라의 샤이니트레저ex 버전도 3,500~4,950원 선입니다.
표를 정리하다 보니 저도 신기했는데, 30년 된 진화선인데 지금 가장 비싼 카드가 가장 최근(2023년) 카드입니다. 캐릭터는 늙지 않아도, 카드 시세는 오래됐다고 무조건 비싸지지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한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