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라치는 천 년에 한 번, 7일만 깨어납니다
천 년에 이레만 깨어나 소원을 들어준다는 지라치, 이름 유래부터 칠석 모티브, 카드 기술 이름까지 전부 '소원'이었습니다. 한글판 27장 중 실거래 기록이 있는 카드는 6장뿐입니다.
지라치는 한 해의 358일을 잡니다. 깨어 있는 날은 7일뿐입니다. 그것도 천 년에 한 번입니다. 혜성이 뜨는 밤에만요. 이 7일 동안 노래를 들려주면 소원을 들어줍니다. 이 설정은 20년 넘게 게임과 카드 양쪽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글판 카드 27장을 전부 꺼내서 이 설정이 얼마나 일관되게 이어지는지, 그리고 어느 카드에 값이 붙어 있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이름은 러시아어에서 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지라치(Jirachi)라는 이름의 어원은 게임프리크가 밝힌 적이 없습니다. 공식 설명이 없습니다. 해외 위키 분석(Bulbanews)과 국내 나무위키가 공통으로 꼽는 후보는 러시아어 желать(질라치, '바라다')입니다. 여기에 일본어 幸(사치, 행복·행운)가 더해졌을 거라는 추정이 붙습니다. 지니(genie, 램프의 요정)에서 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다리 없이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이 근거입니다.
정설은 아닙니다. 여러 위키가 내놓는 추정치일 뿐입니다.
칠석에서 그대로 가져온 디자인
머리에 달린 세 갈래 장식은 칠석(七夕)에 소원을 적어 나뭇가지에 매다는 '소원종이'입니다. 등 뒤로 흘러내리는 두 가닥은 혜성의 꼬리를 본떴습니다. 지라치가 대중에 널리 알려진 건 2003년 극장판 «지라치 위시메이커»인데, 천 년에 한 번 뜨는 '밀레니엄 혜성'이 지라치를 깨우는 에너지원으로 나옵니다.
카드 텍스트에도 이 설정이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2020년 «전설의 고동» 지라치 카드는 포켓몬 분류부터 «희망사항 포켓몬»입니다. 영문판 공식 분류 'Wish Pokémon'과 정확히 같은 뜻입니다. 하단 설명은 이렇습니다 — "1000년에 한 번 밝고 맑은 노랫소리를 듣고 7일 동안 눈을 뜬다." 2018년 프리즘스타 지라치의 설명도 "1000년 중 7일 동안만 깨어나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로 같은 얘기를 합니다. 세트는 계속 바뀝니다. 설정 문장은 그대로였습니다.
한동안 '진짜' 환상의 포켓몬은 지라치뿐이었습니다
3세대(루비·사파이어) 환상의 포켓몬은 지라치와 테오키스, 둘입니다. 그런데 오메가루비·알파사파이어에서 테오키스를 특별한 조건 없이 잡을 수 있게 되면서, 한동안 지라치만 '진짜' 환상의 포켓몬으로 남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벤트 배포뿐이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8세대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샤이닝 펄에서는 조금 다르게 풀렸습니다. 소드·실드 세이브 데이터가 있는 기기로 접속하면 꽃향기마을 신사에서 레벨 5 지라치를 줍니다. 소원 설정이 배포 조건에도 따라붙은 셈입니다.
카드 능력도 죄다 '소원'입니다
카드 텍스트를 옮겨 적다가 저도 좀 놀랐습니다. 기술·특성 이름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소원 계열입니다. «희망사항», «치유소원», «파멸의소원», «소원이루기», «소원의 다리», «널에게 소원을». 일러스트레이터도 세트도 레어도도 20년 가까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름 짓는 규칙 하나만은 안 바뀌었습니다.
2018년 프리즘스타(◇) 룰도 짚을 만합니다. 같은 이름의 프리즘스타 카드는 덱에 1장만 넣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장은 트래시가 아닙니다. 로스트존으로 직행합니다. 딱 한 세트에만 있었던 짧은 실험이었는데, 지라치가 이 룰을 대표하는 카드 중 하나였습니다.
한글판 카드 27장 중, 진짜 팔린 기록이 있는 건 6장뿐입니다
DB에 등록된 한글판 지라치는 27장입니다. 2010년 «호수의 기적»부터 열흘 전 나온 2026년 «30주년 기념»까지 16년 치입니다. 이 중 네이버카페·브레이크 경매로 실제 낙찰된 기록이 남은 카드는 6장뿐입니다.
가장 오래된 2010년 30/40(U)은 낙찰 기록도 호가도 하나 없습니다. 16년 전 카드입니다. 그런데도 시세 자체가 안 잡힙니다. 유통량이 워낙 적거나, 들고 있는 사람들이 거래를 잘 안 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앞서 본 2020년 «전설의 고동» 지라치(A)는 브레이크 경매에서 9월 20일 4,500원에 낙찰됐습니다. 표본이 1건이라 흐름이라고 부르긴 이릅니다.
2016년 «포켓심쿵 컬렉션» 지라치(U)는 무등급이 네이버카페 경매에서 14,000원(8/9)·15,000원(6/5)에 낙찰됐습니다. 그런데 BRG 9등급을 받은 같은 카드는 7월 30일 73,000원에 팔렸습니다. 등급 하나로 값이 5배 뜁니다.
2022년 «타임게이저» 세트의 지라치 V, 레어도만 다른 두 장을 나란히 놓아봤습니다. RR(025/067)은 브레이크 경매 낙찰 2,500원 1건이 전부입니다. SR(071/067)은 낙찰 기록이 4건인데 500원(4/29) → 7,000원(7/18) → 13,000원(7/19) → 2,000원(7/25)으로 오르내립니다. 석 달 새 최저가와 최고가가 26배 차이 났다는 뜻이라, 저라면 지금 찍힌 숫자만 보고 이 카드를 사지는 않겠습니다. 표본 4건으로는 어디가 진짜 시세인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2013년 «메갈로캐논» 지라치 EX(SR)는 올해 6월 16일 41,000원에 낙찰됐습니다. 발매 13년 된 카드입니다. 여전히 4만원대에서 거래됩니다. 낮은 값은 아닙니다.
참고 — 아래 30주년 지라치 ex 두 장은 발매 열흘밖에 안 됐습니다. 시세가 아직 굳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서 봐주세요.
일반판 RR(081/103)은 번개장터 호가 1,000원 1건뿐, 아직 낙찰 기록이 없습니다. 반대로 스페셜 아트 SAR(132/103)은 벌써 낙찰 5건이 쌓였습니다. 9월 19일 40,000원 → 21일 28,000원·22,000원 → 23일 34,000원 → 24일 29,000원.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고 2만2천~4만원 사이를 오갑니다. 이 카드 시세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에 지역 오류가 있어 이번 글에는 싣지 않았습니다. 같은 세트 안에서도 아트 등급 하나로 1,000원과 3만원대가 갈렸습니다.
27장 중 6장. 나머지 21장은 값이 거의 없거나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천 년에 이레만 깨어나는 포켓몬치고는, 카드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도 그리 많지 않은 셈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인기가 없어서인지, 그냥 아직 거래가 안 쌓인 건지, 이 데이터만으로는 저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