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딘은 스푼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수수해졌습니다
캐이시-윤겔라-후딘 진화 라인은 전부 실존 초능력자·마술사 이름을 땄습니다. 스푼 개수와 카드 시세로 그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이름 세 개, 실존 인물 세 명
포켓몬 이름 유래를 파다 보면 가끔 소름이 돋을 때가 있습니다. 캐이시-윤겔라-후딘 진화 라인이 그렇습니다.
캐이시는 잠자는 예언가로 유명했던 초능력자 에드가 케이시(Edgar Cayce)에서 왔습니다. 실제로 도감 설정도 하루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다가, 깨어난 순간 위험을 감지해 순간이동한다고 돼 있죠. 진화하면 윤겔라가 되는데, 이 이름은 스푼을 구부리는 초능력으로 유명했던 유리 겔러(Uri Geller)에서 따왔습니다. 겔러는 실제로 소송까지 걸었습니다. 2023년 1월엔 본인 트위터로 카드 부활을 알렸죠. 이 일화는 예전에 따로 다룬 적이 있어 여기선 짧게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마지막 진화형인 후딘은 탈출 마술의 대가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에서 왔습니다. 재밌는 건 후디니라는 이름 자체도 그가 존경했던 마술사 로베르 우댕(Robert Houdin)에서 딴 예명이라는 점입니다. 이름을 빌려 쓴 포켓몬의 이름을, 또 이름을 빌려 쓴 사람에게서 가져온 셈이죠. 이중 오마주. 저는 이 부분이 세 이름 중 제일 재밌었습니다.
왼쪽부터 캐이시, 윤겔라, 후딘. 1999년 오리지널 베이스세트 인쇄본입니다. 콜렉토리 DB에는 국내 발매 세트로 분류돼 있지만 카드 텍스트는 전부 영어입니다. 그러니 '한국판'이라고 부르진 않겠습니다. 최초의 후딘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여주는 자료로만 씁니다.
스푼은 늘었는데, 오히려 수수해졌습니다
진화하면서 화려해지는 게 보통입니다. 이 라인은 거꾸로 갑니다.
윤겔라는 스푼 1개, 후딘은 스푼 2개를 듭니다. 메가후딘은 아예 손에 쥐지 않습니다. 대신 5개를 공중에 띄웁니다. 스푼 개수는 계속 늘어나는 셈이죠. 그런데 장식은 정작 윤겔라 쪽이 더 화려합니다. 꼬리도 더 깁니다. 후딘으로 진화하면 그 장식이 싹 사라지고 꼬리는 짧아집니다. 나무위키에도 "할배 같다"는 팬 반응이 적혀 있을 정도로, 진화 후 오히려 수수해진 몇 안 되는 사례로 꼽힙니다.
스푼은 장식이 아닙니다. 메가심포니아 R 카드 도감 문구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강력한 초능력을 구사한다. 양손에 든 순가락은 그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스푼이 없으면 위력이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설정도 있습니다. 액세서리가 아니라 증폭기인 셈입니다.
저는 디자인만 놓고 보면 윤겔라 쪽에 한 표 던지고 싶습니다. 스푼 하나 더 든 대가로 장식을 다 내줬으니, 밑지는 장사 같거든요.
IQ 5000, 근육은 없습니다
후딘 도감 설정은 한 줄로 요약됩니다. 뇌는 슈퍼컴퓨터급, 몸은 부실.
베이스세트 카드 문구를 그대로 옮기면 "그 뇌는 슈퍼컴퓨터를 능가한다. 지능지수는 5000으로 알려져 있다"입니다. 뇌가 계속 자라서 목으로 못 버틸 지경이라 초능력으로 머리를 떠받치고 다닌다는 설정까지 있습니다. 근육은 약해서 몸을 움직이는 것도 초능력에 의존합니다. 스푼을 두 개나 들고 있지만, 정작 그 손으로 뭘 할 힘은 없는 셈이죠.
카드로 보는 후딘
콜렉토리에 등록된 후딘 계열 국내 카드는 15장입니다. 그중 몇 장 시세를 짚어보겠습니다.
제일 비싼 건 후딘ex SAR(203/165)입니다. 세트는 포켓몬카드151이죠. 등급 낙찰만 놓고 보면 브레이크옥션 BRG10이 6만7천원(7월 26일 낙찰), 네이버카페 경매 PSA9가 3만8천원(5월 26일 낙찰)에 팔렸습니다. 무등급 매물은 최근 석 달간 네이버쇼핑 기준 2만8천원에서 5만원 사이를 오갔고, PSA10 매물은 11만5천원까지도 올라와 있습니다. 다만 이건 매물가일 뿐이라 실제 체결까지 확인한 건 아닙니다.
샤이니트레저ex 계열은 훨씬 저렴합니다. SSR(326/190)이 3천~5천원대, RR(075/190)은 580원부터 4천원대까지입니다. 같은 후딘인데 세트만 다릅니다. 시세는 10배 넘게 벌어집니다.
2020년에 나온 후딘V(앙천의 볼트태클)도 SR이 2,500~9,000원, RR은 500~4,000원 선입니다.
진화 전 캐이시·윤겔라 쪽도 확인해봤습니다. 커먼·언커먼은 대체로 300원에서 2,000원 사이였고, 제일 비싼 샤이니 S 카드도 4,950원을 못 넘겼습니다. 숫자만 보면 이렇습니다. 캐이시·윤겔라는 진화해도 몇백원, 후딘도 N·R 등급은 몇백원에서 몇천원입니다. 그런데 딱 하나, ex SAR만 3만원대를 훌쩍 넘습니다. 저는 이 결과를 보고 완진화라서 비싼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값을 가르는 건 진화 단계가 아니라 ex 딱지와 SAR 레어도입니다.
| 카드 | 세트 | 레어도 | 가격대 |
|---|---|---|---|
| 후딘ex | 포켓몬카드151 | SAR | 무등급 2.8만~5만원 · BRG10 6.7만원 · PSA9 3.8만원(경매 낙찰) |
| 후딘ex | 샤이니트레저ex | SSR | 3천~5천원 |
| 후딘ex | 샤이니트레저ex | RR | 580원~4천원 |
| 후딘V | 앙천의 볼트태클 | SR | 2,500~9,000원 |
| 후딘V | 앙천의 볼트태클 | RR | 500~4,000원 |
| 후딘 | 메가심포니아 | AR | 1,000~2,500원(경매 낙찰) |
캐이시(에드가 케이시)-윤겔라(유리 겔러)-후딘(해리 후디니). 세 이름 전부 실존 초능력자·마술사에서 따왔습니다. 포켓몬 전체를 통틀어도 이렇게 노골적인 삼단 오마주는 흔치 않습니다.
남는 궁금증
후디니라는 이름을 정확히 언제, 누가 붙였는지는 게임프리크 쪽 공식 코멘트를 찾지 못했습니다. 위키 문서들이 공통으로 짚는 정황 증거뿐이라 여기까지만 적어두겠습니다.
스푼 하나 더 든다고 값이 오르진 않았습니다. 이번에 확인한 카드값을 움직인 건 스푼이 아니라 레어도였습니다.








